
파도를 가르는 뱃노래
두 진수(眞髓와 進水) , 그리고 너의 패들보드.
영화 <트루먼쇼>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너도 무척 사랑하는 영화 일 것이다.
그저 꽤 괜찮은 영화라 보고있던 이 영화에서 트루먼에게 내가 진짜 반하게 되었던 장면은 영화의 클라이막스인 항해를 시작하고 나서다.
단순히 거짓된 스튜디오의 세상으로부터 탈출하겠다가 아닌, 이 곳을 떠나 진짜 제 마음 속 첫사랑인 ‘실비아’를 찾아 내겠다는 한 인간의 목숨을 건 결심. 그 목표.
하물며 실비아에 대한 단서조차 희박해, 조각난 이미지들을 콜라주해 붙여놓은 모습.

삶의 진수(眞髓)는 바람 하나 불지 않는 평온한 날에서 얻을 수 없다.
숱한 수평선 너머의 풍랑을 견디며 나를 깎아내고, 조각난 콜라주 같은 정보들과 경험들로 나를 시험대에 올리며 자신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내면 깊은 곳의 내가 드러난다.
타인의 시선이나, 거창한 명예, 자기 자신에 대한 고고함이 아니라, 가장 담백하게 ‘나는 어떠한 존재인가’ 에 대한 답을 분명하게 알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평화와 초월의 위치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관조의 태도로 보기에 내 마음 속의 움틀거림은 여전히 크게 박동한다. 고요한 호수를 부유하는 잎사귀 위의 부처보다는 비틀거리며 나아가는 뱃사람처럼. (눈물 속의 Reflections - 주간취향)
내면의 진수(眞髓)를 발견한 삶은 멈춰 서서 스스로를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분노하고, 또 웃으며 흐느적거리며 다시 자신의 거대한 배를 물 위에 띄우는 진수(進水)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진수(眞髓)를 깨달은 자만이, 거친 바다로의 진수(進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새로운 진수(進水)를 감행하는 자만이, 삶의 진짜 진수(眞髓)를 맛본다. 나는 내 감정이 풍랑을 만나더라도 좌초되지 않고, 침몰하지 않고 견뎌낼 수 있음을 경험으로, 그리고 다져진 멘털리티를 믿고 나아갈 수 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적을 만들고 하는 것은 잘못되었지만 폭발하는 감정을 부정하거나 부정적이라 여기고 억누르는 것보다 받아들이고 그것을 일으켜 화해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삶의 진수에 가까운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게 네가 말한 관(觀) , 그리고 더 나아가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해소에까지 이르르는 것. 나 뿐 아니라 상대 또한 구원하는 것. 그렇게 되면 삶의 여정에 또 하나의 이야기와 또 하나의 동료들이 생기는 것 아닐까.
나는 불완전하고 미숙한 인간으로서 앞으로도 여러 방황과 갈등, 일희일비할 파도와 물살 속에서 깊은 삶의 진수를 느끼고 살아가고 싶다. 그게 삶이 아닐까. C'est la vie.

* 수현이랑 한참 수영을 하다가 잠깐 해변에 앉아 쉬는데, 너와 순호가 해맑고 즐겁게 패들보드를 타는 게 저멀리 보였다. 엉거주춤 도전하며 일어서서 타고자 하고 그 와중에 바다에 빠지기도 하며 말이다. 우리는 실패 속에서 좌절하지만은 않는다. 배우고 느끼고 즐기고, 또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하는 과정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삶이지. 패들보드에 누워 노도 젓지 않고 부유하기만 한다면 그 즐거움은 딱 그만큼이겠지. 패들보드에 대한 경험과 깨달음도 딱 거기까지일 것이고.
** 사실 너도 그 과정을 지켜봤지만, 계속 그 부표있는 곳까지 구명조끼 없이 가는 것이 내 안의 작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분명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내 안의 믿음이 부족했다. 너무 힘들었고 생각한 것과는 달랐지만, 최선을 다했고 거기까지 가고나서 그리고 또 돌아가는 동안 어푸어푸 헤엄치며 누군가에게는 별 거 아니겠지만, 나에게는 하나의 틀, 껍데기를 깬 경험이었고 그 경험을 선물한 수현이에게, 그리고 함께 있던 너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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