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의 얼굴
실력은 우리를 기억하게 만들지 않는다
네트워크 과학으로 보는 성공의 이면
“붉은 남작“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지 모르겠다.
어디서 들어봤는지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이 나는 것 같다면 바로 그거 맞다.
비록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기체를 붉게 칠하는 행위를 쉬이 보아왔다.

지브리의 <붉은돼지>

기동전사 건담의 <샤아 전용 자쿠II>
하, 하지만 이런 스피드로 다가오는 자쿠는 있을리가 없습니다! 통상의 3배의 스피드로 접근합니다!
샤, 샤아다! 부, 붉은 혜성이다..!"

스누피 Vs 레드바론
이 모든 레드바론에 대한 오마주는
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 전투기 80기를 격추시킨 독일군의 격추왕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 남작이
자신의 비행기를 새빨갛게 도색한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 남작님> 자-알 생기셨다
현대의 공중전이 적 전투기 혹은 미사일이 어디 있는지 발견 해낼 수 있는 색적이 그 핵심이듯이, 1차 세계대전의 공중전 또한 그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내가 어디있는지 발각 당하면 죽음으로 이어질 확률이 급증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타는 기체를 붉게 도장하고 나 여기있으니 맞춰보라는 식으로 전투에 나선 리히트호펜 남작의 모습은 연합군의 조종사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실력에 과장이 있건 없건 그와 같은 행동은 일종의 환상을 낳게되고, 환상은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슈퍼스타와 상대하는 전투기 조종사들은 자신의 본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어 슈퍼스타의 환상은 더욱 증가하게 된다. 사람들은 빛나는 전과를 거둔 리히트호펜 남작에게 레드바론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주었고, 그와 같은 강렬한 캐릭터는 대중문화에 강렬하게 각인되어 남아 있게 되었다.

한편, 연합군에도 에이스 조종사는 있었다.
혹시 르네퐁크에 대해서 들어본 적 있는지 모르겠다. 르네 퐁크?

<René Fonck 형님의 모습>
그는 어쩌면 리히트호펜을 뛰어넘는 전과를 올린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에-이스 파일럿 이었다.
그는 공식적인 증인에 의해 기록된 격추 기록만 75대였고,
비공식 기록을 포함하면 100대가 넘는 격추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25세의 나이로 전사한 리히트호펜과 달리 르네퐁크는 끝내 생존했고, 대서양횡단을 위한 실험 비행도 시도했었다.
비록 그 비행기는 이륙도 하기 전에 추락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레드바론이 그와 같은 불멸의 명성을 누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오늘날 온갖 매체에 리히트호펜과 그가 남긴 붉은 남작에 대한 오마주가 흘러 넘치는 시대에서 어쩌면 그보다 더 대단한 전과를 거두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르네퐁크의 이름은 처참할 정도로 대중에 회자되지 않는다.
세상은 1위만 기억하지 않느냐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르네퐁크의 격추기록은 리히트호펜과 5대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고, 비공식 기록을 포함하면 그가 부동의 1위다. 이것은 하나의 사실을 가리킨다.
즉, 성과(혹은 재능이나 기량)는 대중에게 기억되는 정도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일한 뛰어난 기량을 지니고 있어도 레드바론(폰 리히트호펜)과 르네 퐁크가 대중에게 기억되는 정도는 판이하듯이 두 사람의 핵심적인 차이는 하나는 그가 속한 사회적 연결망에서 그들의 존재가 전파되고 홍보될 쓸모가 있었다는 점이고, 다른 한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를 입소문이나 바이럴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네트워크 과학 분야에서는 허브라고 부른다. 네트워크 과학은 이와 같이 거의 유사한 성과를 지녔던 이들의 성공이 왜 차이가 나는지를 연구하기 위한 학문이다.
네트워크 과학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가 르네 퐁크보다 폰 리히트호펜(레드바론)을 기억(혹은 익숙한) 까닭은 그가 1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에 있어서는 전쟁의 선전에 아주 유용한. 즉, 바이럴이 되기 좋은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지금의 레드바론과 리히트호펜이 누리는 불멸의 명성은 전쟁 당시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영웅이 절실히 필요했던 독일군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다시말해 그가 속했던 독일 사회는 전쟁의 아이콘으로서의 그의 존재의 유용함을 깨닫고 그의 성공을 과장하기로 한 것이다.
마치, 기자회견을 통해 뉴진스의 성공을 위해 일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뉴진스를 낳은 산파가 자신인 것 처럼 민희진 선생이 인식되는 데 성공한 것 처럼

<민희진 선생은 기자회견을 통해 뉴진스 탄생의 산파라는 일종의 아이콘이 되는데 성공했다>
물론, 처음에는 미치는 효과가 국지적이다. “민희진 그게 누구야?"
하지만, 가족, 동료, 친구, 이웃, 협력업체 처럼 우리가 맺고 있는 각자의 소셜 네트워크 속에서 하나하나의 노드node를 지나쳐갈 때마다 우리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사람들의 테두리를 넘어 파장을 일으키면서 폭넓은 공동체로부터 반응을 얻어내게 된다.
즉, 당신의 행위가 당신 주변의 사람들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뉴진스 탄생에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음에도 이제 사람들은 민희진이 있었기 때문에 전적으로 뉴진스가 탄생할 수 있었고, 민희진 선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뉴진스도 없었을 것이라고 믿는데 성공했다.
복잡계 네트워크 연구의 대가인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 미국 노스이스턴대 교수는 ‘운’이라고만 여겨왔던 이와 같은 성공의 역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성공은 그냥 일어날 수 없습니다. 성과가 있어야 합니다. 그럼 성과가 있다고 성공할까요. 성과는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또 어떤 그림을 잘 그리는지 등에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성공은 사회가 얼마나 그 성과를 인정하는지에 관한 겁니다. 즉 성과는 개인적인 것이지만 성공은 사회적인 것입니다.”
바라바시와 그 연구진들은 명문학교에 간신히 합격한 학생들과 간발의 차이로 떨어진 학생들의 향후 학업성취도를 조사했다. 그러나, 명문학교에서 제공하는 우수한 강사진과 프로그램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별차이가 나지 않았다.
즉, 명문학교가 학생을 더 뛰어난 학생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뛰어난 학생이 학교를 명문으로 만들어주는 것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이는 어느 학교에 다니는 지는 중요하지 않고,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중요하다는 것
또 다른 연구에서는 프린스턴대의 경제학자 두 명이 대학 졸업생들의 장기적인 성공요인을 추적했는데, 아이비리그 졸업생의 연봉 중앙값은 졸업한 지 10년 후 7만달러 정도였지만,- 아이비리그에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비리그에 다니지 않은 학생들의 연봉중앙값도 이와 유사했다. 이는 성과가 성공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뒷받침하는 또다른 증거다.
하지만, 승패가 비교적 명확한 위와 같은 상황이면 몰라도, 팀스포츠라던가, 팀 단위의 활동에서는 개개인의 성과가 뛰어나다고 해서 그것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연결망이다.
즉, 우리가 업무를 통해 만들어 내는 성과는 우리가 유명해지는데 필수적이지만,
특정 분야들에 있어서는 성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기서 나오는게 바로 사람이다. 성공을 위해서는 사람들을 이용해야 한다.
그것이 대중이던, 나에게 투자를 하는 투자자건, 고객이건 간에.
물론, 그들을 감동시킬 성과는 필수다.

<충주맨 김선태 선생>
충주맨 김선태 선생이 단 하루만에 30만의 구독자를 모은 것은 적절한 타이밍도 있지만 충주맨이라는 거대한 성과에 힘입은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스스로에게 다소 민감한 질문을 해볼 시간이다.
우리는 압도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가?
혹은 사람들로 하여금 매혹시킬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우리가 일하는 분야는 성과가 곧 성공인가?
아니면, 사람들의 인정이 곧 성공인가?
성공이란 내가 만드는 게 아니라, 타인이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
제각기 성공에 대해 다른 정의와 관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요즘
내가 처한 상황과 성공에 대한 메타인지가
무엇보다 우리 삶의 이정표를 설정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바다의 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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