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타
나는 너를 알아가는 일을 포기했다. 궁금하지 않고, 관심도 없다.
그러나 그것이 너에 대한 경멸과 무관심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런 행위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다.
유튜브를 선호하지 않는게 아니라, 동영상 추천 알고리듬 그 자체와 컨텐츠를 소비하는 ‘특정’ 방식을 혐오한다.
그리고 해당 추천해준 컨텐츠는 그 ‘특정’ 방식에 부합된다.
‘그’ 서브컬쳐 유튜브 컨텐츠 채널의 운영자는 사람들이 쉽게 꺼내지 못하는 주제를 다룬 콘텐츠를 통해 사회를 비추는게 아니다. 그냥 자극적인 소재를 통해 조회수를 빨아먹고 싶을 뿐이다.
사람들이 언급하길 꺼리는 문제를 다룬다고 용감한게 아니다.
사람들이 언급하길 꺼리는 문제 중에는 권력자나 사회고발에 대한 영역도 널려있다. 하지만, 굳이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기이하고 불쾌하며 실패한 사람들’ 만 다룬다.
즉, 착취해도 만만한 타인의 불행을 판매하는 행위일뿐이다.
영상의 정서가 냉소로 시작해 연민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은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내기 좋은 패턴이기 떄문이다.
실제로 그 비슷한 패턴을 가진 채널들은 널리고 널렸다.
‘그’ 채널의 핵심주제는 네가 그렇게 ‘비평’ 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니 그 해석이 해당 채널 운영자가 의도한 핵심주제 라는 것은 동의할 순 없다.
NTR, 레드필, 설거지론, 외모 강박 같은 주제를 계속 다루는 이유로서 ‘자기기만’을 해체하기 위함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실패한 인간을 조롱하는 컨텐츠를 판매해놓고서 촛불 하나 정도의 서사와 존엄을 남겨놓았다고 칭찬받는 것은 그저 ‘타인에 대한 기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 채널이 "시답잖게 영웅화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왜 특정 환경의 사람들을 싸잡아서 아래처럼 판단하고 그것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에는 비판하지 않는가?
‘저지능, 저학력에 가족에게도 버려진 여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우울한 중졸 무직 패배자도 밥을 먹고 산다.’
‘비정규직 패배자 청년이 음모론자를 만나면 생기는 일.’
‘요즘 애들이 도전하지 않는 진짜 이유.’
너 개인의 사정으로 실패한 사람들의 서사를 좋아할 수는 있다.
하지만, 네 페티쉬를 타인에게 유의미하다고 주장 하는 건 곤란한 일이다.게다가 그건 네 개인의 정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애초에 대다수가 정의하는 성숙의 뜻은 승리하는 능력과 아무 상관 없다.
“자신의 실패를 남 탓과 혐오만으로 처리하지 않는 것”이 대다수가 합의하는 ‘성숙’의 뜻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즉, ‘그’ 채널이 그렇게 표현하려 해서 대단한 게 아니며, 누군가를 추켜세우기 위해 바퀴를 재발명할 필요는 없다.
인간이 왜 추해졌는지를 이해하려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왜 누군가가 추하다고 판단하는 일은 서슴치 않나?
이해는 안전한 베팅이다. 거기엔 추한 대상과 추하지 않는 자신이 남는다.
그 관점에서 자신의 추함은 보이지 않는다.이전 글에서 언급한 만(慢, māna) 개념에서 석가모니께서는 이를 가장 늦게까지 살아남는 번뇌로 언급하셨다. 왜냐하면, 추함을 이해하려한다는 번뇌 그 자체에 스스로에 대한 겸손과 타인에 대한 연민이 포함되어 있기 떄문이다.
오히려 진정한 용기는 추함을 마주대하는데서 오지 않는다. 저 추함과 내가 다르지 않고 같다고 바라보는데서 온다.
바다의 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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